the seventh seat — fiction 02
거울의 숲
그 숲은 모든 것을 비춘다.
당신이 잊어버린 것까지도.
경화가 무너진 뒤 사흘이 지났다.
천추궁의 공기가 달랐다. 항상 새벽과 황혼 사이에 멈춰 있는 이 성에 계절 같은 것은 없었지만, 기사들 사이에 흐르는 온도는 분명히 내려가 있었다. 원탁에 함께 앉는 시간이 짧아졌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피하는 쪽이 생겼다. 400년을 함께한 사이에도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혜성은 새삼 알았다.
에릭은 답하지 않은 질문을 안고 있었고, 민우는 답을 받지 못한 분노를 안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동완이 데이터로 벽을 쌓고, 전진이 몸으로 틈을 메우고, 앤디가 웃음으로 균열을 덮었다. 혜성은 — 혜성은 품 안에 경고를 감추고 있었다.
나를 찾지 마라. 나를 찾으면, 일곱 번째 자리가 다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 여섯 자리가 사라진다.
경화에서 가져온 그 한 줄이 혜성의 잠을 빼앗았다. 수(水)의 기사에게만 보이도록 물의 결에 새겨진 글자. 7번째 기사가 남긴 것이 분명했다. 혜성에게만 보이도록 한 이유는 — 혜성만이 읽을 수 있으니까가 아니라, 혜성만이 이 경고를 삼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해야 하나. 혜성은 찻잔을 감싸 쥔 채 생각했다. 말하면 민우는 더 격앙될 것이다. 에릭은 더 닫힐 것이다. 앤디는 — 앤디가 7번째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예언이 있다. 여섯 자리가 사라진다는 경고와 그 예언이 만나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아직은 안 된다. 혜성은 차를 마셨다. 식어 있었다. 이번에는 민우가 데워주지 않았다.
동완이 원탁에 서찰을 펼친 것은 그날 오후였다. 동완의 얼굴에 사흘간의 수면 부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토(土)의 기사는 다른 기사들이 갈등으로 잠을 못 잘 때 데이터로 잠을 못 잤다.
원탁에 앉은 다섯 기사의 시선이 동완에게 쏠렸다. 에릭만 서찰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 없이. 하지만 혜성은 알았다 — 에릭의 턱이 미세하게 긴장하는 것을. 경화 때와 같은 반응.
- 규모
- 중형 산림 세계
- 인구
- 무인 — 거주자 없음
- 특성
- 모든 표면이 반사체. '거울의 숲'이라 불림
- 붕괴
- 진행률 3% — 가속 중
민우가 이를 갈았다. 에릭의 결정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자기가 포함된 것에는 만족했다. 하지만 에릭이 또 정보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소규모 조사팀. 목격자를 줄이겠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앤디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350년을 산 존재의 단호함. 밝은 웃음 뒤에 숨기지만, 이 막내는 자기 의지가 있었다.
에릭이 앤디를 봤다. 음(陰)과 금(金)/양(陽). 가장 어두운 속성의 기사와 가장 밝은 속성의 기사가 마주했다. 잠시의 침묵 뒤에 에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진이 벽에서 등을 뗐다. 동완이 서찰을 접었다. 두 사람은 남겠지만, 표정은 못마땅했다. 전진은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전진의 경고를 들으며 혜성은 생각했다.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400년을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 이름. 얼굴. 감정. 기사의 대가로 닳아 없어진 것들. 그런 것들이 거울에 비친다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동시에, 보는 것이 두렵다.
넷이 출발했다. 에릭이 어둠 속에서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경화의 분홍빛 호수가 아니라 — 은빛이었다. 숲 전체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혜성은 숨을 삼켰다.
나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들. 줄기가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 나무들의 표면이 — 거울이었다. 은빛 수피(樹皮)가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나뭇잎도 거울이었다. 이끼도, 바닥의 돌도, 심지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포자까지. 모든 것이 빛을 반사했다. 숲 안은 햇빛이 없는데도 밝았다. 빛이 무한히 튕겨 다니며 스스로 광원이 된 것이다. 그 빛에 열기가 없었다. 차갑게 빛나는 세계.
걸을 때마다 수천 개의 자신이 따라왔다. 나무마다 비치는 에릭, 민우, 혜성, 앤디. 어느 방향을 봐도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거울상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거울 속 자신도 고개를 돌렸다. 손을 들면 거울 속 자신도 손을 들었다.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숲으로 30분쯤 들어갔을 때였다.
민우가 먼저 알아챘다. 화(火)의 기사는 감각이 날카로웠다 — 감정이 날카로운 만큼.
가장 가까운 나무를 봤다. 나무 표면에 비친 민우가 — 0.5초 늦었다. 민우가 고개를 돌렸는데, 거울 속 민우는 아직 앞을 보고 있었다. 0.5초 뒤에야 따라 돌았다. 마치 — 생각하고 나서 따라하는 것처럼.
혜성이 차원의 결을 읽었다. 수(水)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실. 이 차원을 이루는 실이 — 꼬여 있었다. 경화에서 실이 잘린 것과 달랐다. 여기서는 실이 매듭지어져 있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 이 차원의 실을 복잡하게 꼬아서, 현실과 반사 사이에 시차를 만든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갔다. 거울 속 모습의 시차가 점점 벌어졌다. 1초. 2초. 나중에는 — 거울 속 자신이 완전히 다른 행동을 했다.
앤디가 오른쪽 나무를 지나쳤을 때, 거울 속 앤디는 멈춰 있었다. 멈춰 서서 —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앤디가 발걸음을 멈추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앤디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울 속 앤디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의자. 돌로 만든 의자가 거울 속 숲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원탁의 일곱 번째 자리와 같은 모양의 의자. 거울 속 앤디가 — 그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현실의 앤디는 서 있었다. 거울 속 앤디는 앉아 있었다. 같은 사람인데 다른 행동. 앤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혜성이 왼쪽의 나무를 봤다. 거울 속 혜성이 —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현실의 혜성은 울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안쪽이 서늘했다. 거울이 끌어낸 것이 무엇인지 혜성은 알았다. 300년간 매일 빈 자리를 바라보며 삼킨 것.
에릭의 거울을 본 것은 민우였다. 민우가 에릭 옆의 나무를 지나치다 멈췄다. 눈이 커졌다.
"에릭 형."
에릭의 거울상 옆에 누군가 서 있었다.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 윤곽은 희미했지만 — 형체가 있었다. 에릭보다 약간 작은 키. 어깨가 가늘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버릇이 있는 사람. 거울 속 에릭이 그 사람을 향해 —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현실의 에릭이 앞을 보는 동안, 거울 속 에릭은 옆을 보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여기 없는 사람을.
에릭의 목소리가 낮았다. 명령이 아니라 — 부탁에 가까웠다. 430년을 산 수장의 목소리에서 처음 듣는 톤이었다. 민우가 입을 다물었다. 에릭의 거울을 다시 보지 않았다.
숲이 깊어질수록 거울의 반영은 더 선명해졌다. 걷는 것이 고통이 되었다. 사방에서 자신의 안쪽이 노출되는 감각. 벗겨지는 것 같았다. 피부가 아니라 — 기억이.
혜성이 차원의 결을 다시 읽었다. 실의 매듭이 하나의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숲의 한가운데. 모든 반사가 수렴하는 지점.
혜성이 고개를 저었다.
"빨아들이는 게 아니야. 비추는 거야. 거울이니까. 다만 — 비추는 과정에서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오고, 올라온 기억은 다시 가라앉을 때 조금 더 희미해져. 이 숲을 오래 걸으면 — 기억을 잃어."
기사의 대가와 같은 것이었다. 기사로 살수록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닳는다. 이 숲은 그 과정을 가속시키는 것이었다.
넷이 숲의 중심을 향해 걸었다. 사방의 거울이 그들의 안쪽을 비추며 따라왔다. 혜성은 자기 거울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거울은 어디에나 있었다.
거울 속 혜성의 옆에도 — 누군가 서 있었다. 에릭의 거울에 보인 것과 같은 윤곽. 거울 속 혜성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혜성은 고개를 돌렸다. 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숲의 중심에 호수가 있었다.
나무들이 원형으로 물러나 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호수가 고여 있었다. 크지 않았다 — 지름 30미터쯤. 수면이 완벽하게 고요했다. 바람이 불어도 물결이 일지 않았다. 거울보다 더 정확한 수면. 주변의 나무가 수면에 비치고, 하늘이 비쳤다. 하지만 — 비친 하늘의 색이 달랐다. 현실의 하늘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는데, 수면에는 하늘이 또렷하게 비치고 있었다. 보랏빛과 금빛이 섞인 하늘. 천추궁의 하늘과 같은 색.
혜성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 호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데 — 알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발이 이 흙을 밟아본 적이 있었다.
"명경(明鏡)."
혜성이 중얼거렸다. 이름이 입에서 나왔다. 기억이 아니라 습관처럼.
혜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안다. 하지만 어떻게 아는지 모른다. 기사의 대가인가 —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운 기억인가.
호수 위에 봉인이 있었다. 경화의 물기둥과 달리 여기서는 — 수면 아래에 있었다. 호수 바닥에서 빛이 올라왔다. 은은하게. 수(水)의 기사에게만 보이는 빛. 술식이 수면 아래에 새겨져 있었다.
혜성이 호수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수면에 손을 대었다. 물이 차가웠다. 아니 — 차가운 것이 아니라 슬펐다. 물이 슬프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지만, 수(水)의 기사에게 물은 감정이었다. 이 호수의 물은 300년 동안 슬퍼하고 있었다.
손이 수면에 닿는 순간, 세계가 바뀌었다.
같은 호수였다. 같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이 아니었다 — 나무의 수피는 평범한 갈색이었고, 이끼는 초록이었다. 반영림은 원래 거울의 숲이 아니었다. 평범한 숲이었다.
호수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혜성과 — 누군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가 가늘었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버릇이 있었고, 목소리가 — 바람 같았다. 그렇다. 이 사람의 목소리는 바람 같았다. 부드럽고 멀었다.
"혜성아."
그가 혜성을 불렀다. 기사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기사들 사이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은 — 의미가 있었다. 이름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잔해이니까. 기사로 살수록 잊히는 것.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상대의 인간적인 부분을 기억하겠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봉인을 남길 거야."
그가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 차원에 뭐가 있어?"
혜성이 물었다. 기억 속의 혜성은 지금보다 — 표정이 풍부했다. 눈이 더 컸고,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갔다. 110년 전의 혜성은 아직 인간의 표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여기에 남기는 거야. 아무도 찾지 않을 곳에."
그가 웃었다. 그 웃음도 바람 같았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 잡을 수 없는 것.
"너만은 알아야 해. 하지만 — 아직은 안 돼."
"뭘 알아야 하는데?"
"때가 되면 이 숲이 보여줄 거야."
그가 혜성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손이 따뜻했다. 무(無)의 속성은 차가울 것 같지만 — 이 사람의 손은 늘 따뜻했다. 모든 속성의 부재이자 근원. 속성이 없기에 어떤 온도든 될 수 있었고, 이 사람은 혜성 앞에서 항상 따뜻한 쪽을 택했다.
손이 이마에 닿은 순간,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기억의 한 조각. 이름. 이 사람의 이름이 — 사라졌다. 혜성은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물의 기사는 모든 것을 비춘다."
그가 말했다. 손을 내리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 비추지 않는 것 속에 있어."
그리고 일어섰다. 뒤를 돌았다. 걸어갔다.
혜성이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혜성이 수면에서 손을 떼었다. 뺨이 젖어 있었다.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모르겠다. 300년 만의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300년 동안 매일 흘렸지만 기억하지 못한 눈물이었는지.
민우가 혜성의 어깨를 잡았다. 아무 말 없이. 화(火)의 기사의 손은 항상 뜨거웠지만, 지금 그 열기가 위로가 되었다.
앤디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혜성이 본 것을 앤디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혜성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았다. 350년을 함께한 막내에게도 이 정도의 읽기는 가능했다.
에릭은 — 돌아서 있었다. 등을 보이고 있었다. 혜성이 호수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에릭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보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보면 — 감당할 수 없으니까.
혜성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에릭이 돌아섰다. 표정은 여전히 돌이었지만 — 눈이 달랐다. 430년을 산 이 남자의 눈에 두려움 비슷한 것이 있었다.
"뭐라고 쓰여 있어?"
혜성이 수면을 내려다봤다. 호수 아래에서 빛나는 술식. 그 한가운데에 새겨진 글자. 경화에서 본 경고와 다른 것. 이번에는 — 이미지였다. 문자가 아니라 기억의 조각. 수(水)의 기사가 읽으면 기억으로 변환되는 형태의 기록.
혜성이 다시 수면에 손을 대었다.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이번에는 회상이 아니라 — 메시지였다.
이 봉인은 다섯 중 하나다. 다섯 봉인이 모두 풀리면 — 명허(冥墟)의 문이 열린다. 열리면 안 된다. 봉인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 더 이상 유지할 힘이 없다.
다섯 봉인. 혜성의 눈이 커졌다. 경화의 봉인, 반영림의 봉인. 이미 둘이 약해지고 있었다. 남은 셋은 어디에.
그리고 명허. 하계. 소멸한 차원의 잔해가 가라앉는 곳. 귀기(鬼氣)의 원천. 그 문이 열리면 —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침묵. 네 기사의 얼굴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굳었다. 명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했다. 기사들은 400년 가까이 명허의 기운이 만상계에 스며드는 것을 막아왔다. 그것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민우의 목소리에 분노가 아닌 것이 섞여 있었다. 처음으로. 당혹. 아니 — 죄책감에 가까운 것. 300년간 사라진 동료를 원망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그가 혼자서 이런 짐을 지고 있었다면.
에릭이 말이 없었다. 에릭의 침묵이 대답이었다.
숲이 변한 것은 혜성이 봉인의 메시지를 읽은 직후였다.
소리가 먼저 달라졌다. 나뭇잎이 바람 없이 울렸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내는 공명. 그 소리가 높아지더니, 나무의 거울 표면에 금이 갔다.
금이 간 거울에서 — 무언가가 나왔다.
그림자. 아니, 반사. 거울 속에 있어야 할 반사가 거울 바깥으로 빠져나온 것이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입체가 아니었다. 평면이었다. 종이를 세워놓은 것처럼 얇은 존재. 하지만 그 얇은 면에 — 기사들의 얼굴이 있었다.
혜성의 반사가 가장 먼저 나왔다. 거울 속에서 울고 있던 그 혜성. 뺨에 눈물 자국이 있었고, 눈이 텅 비어 있었다. 손을 뻗었다 — 현실의 혜성을 향해. 그 손이 닿으려는 순간 에릭이 혜성을 뒤로 밀었다.
에릭이 알고 있었다. 이 숲의 방어 기제를. 봉인에 접근한 자에게 숲이 반격하는 것. 혜성은 물을 시간이 없었다 — 왜 알고 있는지.
반사들이 쏟아졌다. 모든 나무에서. 수백, 수천의 반사가 거울 밖으로 나와 기사들을 에워쌌다. 각 기사의 반사가 각 기사를 향해 다가왔다. 손을 뻗으며. 텅 빈 눈으로.
에릭이 먼저 움직였다. 음(陰)의 술법 — 그림자가 에릭의 발밑에서 솟구쳐 반사들을 덮쳤다. 하지만 —
효과가 없었다.
그림자가 반사를 통과했다. 거울은 그림자를 먹는다. 어둠을 비추면 어둠이 되니까. 에릭의 음(陰) 속성이, 거울로 이루어진 이 차원에서는 무력했다.
에릭의 목소리에 당혹이 스쳤다. 430년의 전투 경험에서도 드문 상황. 자기 술법이 통하지 않는 환경. 음(陰)의 기사가 거울의 세계에서 무력해지는 것은 — 논리적으로 당연했지만, 그것을 몸으로 겪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민우가 화(火)를 펼쳤다. 주먹에서 불이 타올라 가장 가까운 반사를 덮쳤다. 불이 거울을 녹였다. 반사가 비명 — 아니, 비명처럼 들리는 공명을 내며 사라졌다. 하지만 녹은 거울에서 빛의 파편이 흩어졌다. 그 파편 하나하나가 기억이었다. 누군가의 기억. 민우가 녹인 반사에 담겨 있던 기억의 조각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민우의 눈이 흔들렸다. 흩어진 파편 속에서 무언가를 본 것이다.
민우가 멈칫한 사이 다른 반사가 다가왔다. 민우의 반사. 거울 속에서 민우는 혼자였다. 원탁이 보였는데 — 민우의 자리만 있고 다른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여섯 개의 빈 자리와 혼자 앉은 민우. 민우의 가장 깊은 두려움이 형태를 갖춘 것이었다.
반사가 민우의 팔을 잡았다. 민우의 몸이 경직되었다. 눈이 풀렸다 — 기억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민우!"
혜성이 수(水)의 술법을 펼쳤다. 호수의 물이 솟아올라 민우를 감싼 반사를 떼어냈다. 물은 거울에 반사되지 않는다 — 물은 스스로가 거울이니까. 수(水)의 술법이 이 차원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다.
민우가 풀려났다. 하지만 눈이 흐릿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눈. 민우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괜찮은데 — 뭔가 하나 안 떠올라. 뭐였지. 방금까지 있었는데."
기억 하나를 빼앗겼다.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이 숲의 잔인함이었다.
반사들이 더 몰려왔다. 에릭의 그림자는 무력했고, 민우의 불은 기억을 흩뿌렸다. 혜성의 물은 방어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수백의 반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앤디가 앞으로 나섰다.
앤디의 양손에서 빛이 피어났다. 금(金)/양(陽)의 빛. 거울은 그림자를 먹고, 불은 거울을 녹이고, 물은 거울이 된다. 하지만 빛은 — 거울을 통과한다. 반사가 아니라 투과. 양(陽)의 속성은 비추는 것이 아니라 꿰뚫는 것이었다.
앤디가 빛을 풀었다. 단순한 섬광이 아니었다. 빛이 나무 사이를 관통하며 거울 표면을 꿰뚫었다. 반사가 아닌 투과. 거울 속의 반사가 빛에 꿰뚫려 사라졌다. 비명 같은 공명이 숲 전체를 울렸다.
앤디의 빛이 반영림을 정화했다. 미각성 상태에서도 이 정도였다. 양(陽)이 완전히 깨어나면 어떻게 될지 — 혜성은 처음으로 실감했다. 예언이 앤디를 가리키는 이유를.
하지만 앤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각성 상태에서 이 규모의 술법은 몸에 부하가 컸다. 앤디가 무릎을 꿇었다. 에릭이 앤디를 잡았다.
반사들이 물러났다. 숲이 조용해졌다. 나무의 거울 표면에 금이 간 채로, 더 이상 반사가 빠져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가가 있었다.
혜성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희미해져 있었다. 기억이 아니라 — 감각. 이 숲이 빼앗은 것. 민우는 기억 하나를, 혜성은 손끝의 촉감을. 에릭은 — 에릭의 눈 아래에 검은 선이 하나 더 생겨 있었다. 음(陰)의 반동. 앤디는 체력을 소진했다.
넷이 숲을 빠져나왔다. 에릭이 문을 열었다. 천추궁의 보랏빛 하늘이 보였다. 혜성은 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숲의 거울들이 금이 간 채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300년 전, 누군가와 함께 이 숲에 온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 그의 이름은 모른다.
이름만 빼고 돌려준 것이다. 이 숲이. 아니 — 그가. 300년 전에 지운 이름만큼은, 아직 돌려줄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천추궁. 밤이었다. 천추궁에서의 밤은 보랏빛이 짙어지는 것이다. 금빛이 빠지고, 보라만 남는 시간.
원탁에 보고가 끝난 뒤, 동완과 전진이 자리를 떴다. 동완은 반영림의 데이터를 정리해야 했고, 전진은 앤디를 쉬게 해야 했다. 민우는 — 민우는 술병을 들고 어딘가로 갔다. 잃어버린 기억 하나가 무엇이었는지, 아마 밤새 떠올리려 할 것이다.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혜성이 에릭을 찾은 것은 성벽 위였다. 에릭은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만상계가 보이는 자리. 수천 개의 차원이 빛나는 점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중 다섯에 봉인이 있다. 두 개는 이미 약해지고 있다.
"에릭."
에릭이 돌아보지 않았다. 혜성이 옆에 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만상계를 내려다봤다. 400년 동안 수없이 반복한 구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이에 놓인 것이 달랐다.
"너는 거기 있었지. 그가 떠나는 날."
혜성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비난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거울의 숲이 보여준 것 — 에릭의 반사 옆에 서 있던 윤곽. 그것은 에릭의 기억이었다. 에릭이 마지막으로 7번째 기사를 본 날의 기억.
에릭의 침묵이 길었다. 바람이 불었다. 성벽 위의 바람은 차가웠다.
처음이었다. 300년 만에 에릭이 인정한 것. 혜성의 가슴이 조여왔다.
"왜 말하지 않았어."
에릭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세하게. 430년을 산 음(陰)의 기사.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대가를 치르는 남자. 그 남자의 목소리가 갈라진 것을 혜성은 — 300년 만에 처음 들었다.
혜성은 에릭을 바라보았다. 에릭의 눈 아래에 검은 선이 있었다. 반영림에서 생긴 것.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300년 동안 혼자 진실을 안고 있었던 무게가 그 선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그가 내 기억을 지운 것도 알고 있었어?"
에릭이 처음으로 혜성을 봤다. 음(陰)과 수(水)가 마주했다. 어둠과 물.
혜성의 눈에서 물이 흘렀다. 물의 기사의 눈물. 천추궁의 보랏빛 바람이 눈물을 말렸다.
300년간 매일 빈 자리를 바라봤다. 왜 바라보는지도 모르면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그것이 의도된 것이었다. 이름을 지운 사람도, 그것을 지켜본 사람도 — 혜성이 빈 자리 앞에서 보낼 300년을 알고 있었다.
"잔인해."
혜성이 말했다. 에릭을 향한 것인지, 7번째를 향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한 마디.
에릭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한동안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만상계의 빛나는 점들이 아래에서 깜빡였다. 그중 다섯에 약해지는 봉인이 있고, 그 봉인 너머에 명허의 문이 있다.
혜성이 말했다.
에릭의 눈이 좁아졌다.
혜성이 경화에서부터 품고 있던 경고를 에릭에게 건넸다. 모두에게가 아니라 에릭에게만. 이것이 혜성의 판단이었다. 모두에게 말하면 혼란이 온다. 에릭에게만 말하면 — 에릭이 짊어진다. 또 하나의 짐을. 잔인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혜성은 에릭이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430년을 봐왔으니까.
에릭의 얼굴이 — 혜성이 400년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돌이 아니었다. 무표정이 아니었다. 고통이었다. 순수한 고통. 0.5초 동안. 그리고 다시 돌이 되었다.
혜성이 에릭을 봤다.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경고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찾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도 7번째 기사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혜성에게 경고를 남긴 것은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 각오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성벽 아래로 바람이 불었다. 천추궁의 바람. 만상계의 수천 차원 위를 스치고 온 바람.
혜성은 손끝을 움직여 보았다. 반영림에서 잃어버린 촉감. 물건을 만지면 0.5초 뒤에야 느낌이 왔다. 거울의 숲이 가져간 대가. 앞으로 세 곳의 봉인을 더 찾아가면 — 무엇을 더 잃게 될까.
그래도 간다. 빈 자리의 주인이 나를 찾지 말라고 했지만 — 300년간 매일 빈 자리를 바라본 사람에게 그 말은 통하지 않는다.
원탁으로 돌아갔다. 빈 자리가 거기 있었다. 이름이 지워진 일곱 번째 자리. 혜성은 그 자리 앞에 섰다. 300년간 해왔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거울의 숲이 돌려준 기억이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 어깨가 가늘고, 고개를 기울이는 버릇이 있고, 바람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
혜성이 빈 자리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름이 녹아 없어진 자리. 0.5초 뒤에 돌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안다 — 그가 스스로 이름을 지웠다는 것을. 혜성의 기억에서도, 원탁의 돌에서도. 찾지 못하게 하려고.
찾겠다.
여섯 자리가 사라진다 해도.
거울은 모든 것을 비춘다
당신이 잊은 것까지
다섯 봉인 중 둘이 흔들리고 있다.
남은 셋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