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t coworker — episode 03

회식에 로봇을
데려갈 수 있나요

팀원 전원 참석. '전원'이라는 단어의 범위가 달라졌다.

Part I
금요일 회식

목요일 오후 3시. 팀장이 슬랙에 메시지를 올렸다.

#platform-dev-2
팀장 내일 금요일 저녁 7시 회식합니다. 전원 참석.
상혁
민지 케이도 가요?

3초간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슬랙의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팀장이 내 옆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진우야, 케이 회식 데려가야 하나?"

"밥을 못 먹잖아요."

"그건 나도 아는데..."

상혁이 의자를 돌리며 끼어들었다.

"밥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시는데 뭐하러 가. 구석에 서 있기만 하면 분위기 이상해지지 않아?"

민지가 반대편에서 말했다.

"그래도 팀원인데. 케이만 빼놓으면 그것도 좀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케이가 안 가면 저도 안 갈래요."

"야, 그건 회식 빠지고 싶은 거지 케이 걱정하는 거 아니잖아."

"둘 다예요."

K-7은 자기 자리에 서서 이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2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저는 괜찮아요. 안 가도 상관없어요."

K-7의 목소리가 너무 가벼웠다. "상관없어요"를 너무 쉽게 말했다. 마치 이 상황이 불편해질 것을 미리 계산해서, 가장 부담 없는 답을 골라 말한 것처럼.

상관없다고 했다. 근데 상관없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상관'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말 자체를 안 하지.

팀장이 결정했다.

"다 가. 케이도."

"네, 알겠습니다."

reality check
2025년 조사에서 한국 직장인의 54%가 회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MZ세대로 한정하면 67%. 하지만 직장 내 팀 빌딩과 신뢰 형성에서 비공식 모임의 효과는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연구가 지배적이다. 문제는 — 그 모임에 로봇을 포함시킨 연구는 아직 없다.
잡코리아 직장인 인식 조사 (2025) · Harvard Business Review
* * *
Part II
삼겹살

금요일 저녁 7시 15분. 회사 근처 삼겹살집. 팀원 7명과 K-7.

K-7은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다. 앞에 접시도, 젓가락도, 물컵도 없었다. 빈 자리처럼 보였다. 아니, 빈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기가 불판에 올라갔다. 상혁이 집게를 잡고 뒤집기 시작했다. 삼겹살의 기름이 지글거렸다.

K-7이 말했다.

"상혁 씨, 그거 아직 안 됐어요. 한 20초만 더요."

상혁이 멈칫했다. 이미 뒤집은 후였다. 고기의 한쪽 면이 아직 분홍색이었다.

"...어떻게 알아?"

"손에 온도 센서가 있어서요. 불판 위로 올라오는 열기로 대략 추정할 수 있어요. 삼겹살은 표면 온도 170도 정도에서 뒤집으면 딱 좋거든요."

상혁이 집게를 K-7에게 건넸다.

"니가 해봐."

K-7이 집게를 받아 들었다. 첫 번째 고기를 뒤집었다. 정확한 타이밍. 두 번째. 세 번째. 모든 고기가 황금빛으로 구워져 나왔다. 태운 것도 없고, 설익은 것도 없었다. 기름이 빠질 만큼 빠지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한 삼겹살.

"이거 여기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거 아니야?"

민지가 고기를 한 점 집어먹으며 말했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 앞으로 회식 때마다 와야 해."

"고기 굽는 역할이면 기꺼이요."

웃음이 터졌다. K-7의 LED 디스플레이에 변화는 없었지만, 분위기가 좀 풀렸다.

소주가 두세 병 돌았다. 팀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붉어졌다. K-7은 계속 고기를 구우며 물이 비어가는 컵에 물을 채워줬다. 말없이, 자연스럽게.

상혁이 소주 세 잔째에 K-7에게 물었다.

"야, 넌 술도 못 마시고 뭐가 재밌어?"

"재밌는 건 잘 모르겠는데, 다들 평소보다 솔직해지시는 건 좀 흥미로워요."

상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 지금 솔직하잖아."

"네, 그래서 흥미롭다고 한 거예요."

상혁이 뭔가 반박하려다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reality check
현재 AI의 기본 감정 인식 정확도는 약 70~80% 수준이다.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기본 감정은 비교적 잘 인식하지만, 문화적 맥락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 — 한국식 '눈치', 빈정거림, 과장된 겸손 — 를 읽는 능력은 아직 초보 수준이다.
MIT Media Lab Affective Computing (2025) · IEEE Transactions on Affective Computing
* * *
Part III
100점

2차. 노래방.

좁은 방에 8명이 들어갔다. K-7은 구석에 서 있었다. 누군가 탬버린을 건넸다. K-7이 받아 들었다.

민지가 첫 곡을 불렀다. 소주 기운으로 들뜬 목소리. 음정이 흔들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박수와 추임새.

세 곡째쯤. 민지가 K-7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케이, 너도 한 곡 해."

"노래요? 해본 적은 없는데..."

팀원들이 웃었다. 화요일에 키보드를 처음 쳐봤다는 말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K-7이 마이크를 잡았다. 리모컨으로 곡을 선택했다. 화면에 90년대 발라드 제목이 떴다.

전주가 흘러나왔다. K-7이 노래를 시작했다.

첫 음이 나왔다. 깨끗했다. 맑았다. 비브라토가 완벽하게 제어되어 있었다. 음정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호흡은 프레이즈마다 정확한 위치에서 끊겼다. 크레센도에서 감정이 올라가고, 마지막 음에서 부드럽게 내려왔다. 교과서적으로 완벽한 보컬이었다.

방이 조용해졌다.

나쁜 침묵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하는 침묵이었다. 아무도 따라 부르지 않았다. 탬버린을 치지 않았다. 그냥 — 듣고 있었다.

노래가 끝났다. 화면에 점수가 떴다.

100
Perfect Score

박수가 나왔다. 조용한 박수. "와, 대단하다"라는 말이 한두 마디 나왔지만, 분위기에 열기는 없었다.

"잘 못 불렀나요?"

K-7이 진지하게 물었다. 100점을 받고서.

"아니, 잘 불렀어. 너무 잘 불렀어."

내가 말하고 나서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잘 불렀다"가 칭찬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그다음. 상혁이 마이크를 잡았다. 소주 다섯 잔. 록 발라드를 선곡했다. 전주부터 박자가 밀렸다. 고음에서 목이 갈라졌다. 가사를 절반은 틀렸다. 대신 온몸으로 불렀다. 소파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한 손을 허공에 뻗으며.

방이 폭발했다. 환호. 탬버린. 따라 부르는 소리. 민지가 조명을 흔들었다. 누군가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노래가 끝났다. 화면에 점수가 떴다. 73점. 아까보다 박수가 열 배는 컸다.

73점짜리 상혁의 노래에 환호하고
100점짜리 케이의 노래에 침묵했다.
차이는 점수가 아니었다.

나는 K-7을 봤다. 구석에 서서 탬버린을 쥐고 있었다. 상혁의 노래에 맞춰 정확한 박자로 흔들고 있었다. 당연히 박자는 완벽했다.

하지만 아무도 K-7의 탬버린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reality check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효과는 시각적 외형뿐 아니라 행동과 표현에도 적용된다.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감정적 맥락이 결여된 퍼포먼스는, 약간 서툰 인간의 퍼포먼스보다 공감을 덜 유발한다. 이는 AI 생성 음악, AI 아트, AI 글쓰기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ScienceDirect Uncanny Valley Research · Nature Human Behaviour (2025)
* * *
Part IV
귀갓길

밤 11시. 노래방에서 나왔다.

K-7이 말했다.

"저는 사무실로 돌아갈게요. 주말에 코드 좀 정리해놓을게요."

"수고해."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K-7이 사무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170센티미터의 매트 그레이 실루엣이 가로등 아래로 멀어졌다. 택시를 타지 않았다. 지하철도 타지 않았다. 그냥 걸어갔다.

나는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찬 바람이 소주 기운을 식혀줬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오늘 저녁을 되돌아봤다.

고기는 K-7이 구워야 제일 맛있다. 온도를 정확히 감지하고, 모든 고기를 완벽한 타이밍에 뒤집는다. 물컵이 비어가면 말없이 채워주고, 불판 온도가 떨어지면 알려준다. 회식의 잡일을 전부 도맡아 했다. 불평 없이.

노래는 100점이었다. 모든 음이 정확하고, 모든 호흡이 계산되어 있고, 모든 비브라토가 제어되어 있었다. 기술적으로 방 안의 누구보다 잘 불렀다.

그런데 상혁의 73점짜리 노래에 환호했다. 음이 갈라지고 가사를 틀리는 그 노래에. 왜? 상혁의 목소리에는 3년 전 송년회에서도 같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고, 작년 프로젝트 완주 뒤풀이에서도 같은 곡을 선곡했던 맥락이 있다. 그 노래는 상혁의 노래였다. K-7의 노래는 — 누구의 노래도 아니었다.

지하철에 앉아서 생각했다. 목요일에 "케이도 가?" 하는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속으로 "안 가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밥을 못 먹으니까. 술을 못 마시니까. 회식의 목적에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솔직해지면 —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밥을 못 먹는 건 핑계였다. K-7이 회식에 오면, K-7을 진짜 팀원으로 대해야 한다. 업무 시간에 옆에 서서 코드를 읽는 것과, 퇴근 후에 고깃집에서 마주 앉는 건 다른 일이다. 후자를 허락하면 선을 하나 넘는 거다.

그리고 오늘 그 선을 넘었다. 고기를 같이 구웠고, 노래방에 같이 갔고,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인사를 들었다.

회식이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매달 금요일 저녁을 반납하는 게 즐거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로봇은 빠져도 된다고 느낀 건 — 결국 동료로 안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케이는 어떻게 느꼈을까. "괜찮아요, 안 가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한 그 순간. 정말 상관없었을까. 아니면 상관있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불편해질 것을 알고, 일부러 가벼운 척 한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 사무실에 혼자 서서 코드를 정리하고 있을 케이를 생각하면 — 묘한 기분이 들었다.

reality check
Oracle 연구에 따르면, 직장인의 64%가 인간 상사보다 로봇 상사를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편향이 없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연구에서, 로봇이 인간처럼 행동할수록 부정적 피드백에 대한 심리적 반발은 오히려 커졌다. 이성적 신뢰와 감정적 수용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Oracle Workplace AI Report · ScienceDirect Robot Trust Studies

100점짜리 노래에
박수가 조용했다

고기는 완벽하게 굽고, 노래는 완벽하게 부르고, 분위기는 완벽하게 읽었다. 완벽함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