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ot coworker — episode 05
로봇의 연봉은
얼마인가
인사팀에서 K-7의 성과 평가서가 도착했다.
'성장 가능성' 칸 앞에서 커서가 멈췄다.
월요일 아침. 인사팀에서 메일이 왔다.
"플랫폼개발2팀 박진우 님, K-7 (사번 R-0001)의 분기 성과 평가서를 작성해주세요. 제출 기한: 금요일." 평가 항목은 다섯 개였다. 업무 능력, 팀 기여도, 커뮤니케이션, 성장 가능성, 종합 의견.
나는 평가 시트를 열었다.
업무 능력. 코드 품질, 태스크 완료율, 장애 대응 능력. 이건 쉬웠다. K-7은 312만 줄의 코드를 5초 만에 읽고, PR을 0.3초 만에 리뷰하고, 새벽 3시 장애를 혼자 해결했다. S등급 외에 줄 등급이 없었다.
팀 기여도. 협업, 코드리뷰, 지식 공유. 이것도 명확했다. 밤새 기술 부채를 정리하고, 모든 PR에 0.3초 리뷰를 달고, 회식에서 삼겹살을 완벽하게 구웠다. A등급.
커뮤니케이션. 의사소통 명확성, 피드백 수용. K-7은 항상 명확하게 소통했다. "잘 못 이해한 것 같은데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물을 줄 알았고, 코드리뷰에서 샌드위치 기법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A등급.
성장 가능성.
커서가 멈췄다.
성장 가능성이란 뭔가. 인간 개발자에게는 명확하다. 주니어가 시니어로, 시니어가 리드로, 리드가 아키텍트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도메인 지식을 쌓고, 리더십을 키우는 과정. 그런데 K-7에게 '성장'이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성장인가? 하드웨어 교체가 성장인가? K-7이 2년 후에 더 나은 개발자가 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가?
K-7에게 물어봤다.
"케이, 너 성과 평가 대상인 거 알아?"
"네, 메일 봤어요. 재밌네요. 저도 궁금해요, 제 점수."
"성장 가능성 항목이 있는데... 네가 생각하기에 넌 성장할 수 있어?"
K-7이 0.5초 정도 멈췄다. 처리 시간치고는 긴 편이었다.
"모델이 업데이트되면 더 잘하게 되긴 하죠. 근데 그게 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어서...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직한 답이었다. 자기 발전이 자기 의지가 아닌 존재. 업데이트 파일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능력이 바뀌는 존재. 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화요일. 누군가 슬랙 #general 채널에 스프레드시트를 공유했다. 이름은 없었다. 제목: "인력 비용 비교 (참고용)".
1,400만 원 대 7,100만 원. 차이는 5,700만 원. K-7 한 대가 인간 개발자 한 명의 1/5 비용으로 24시간 무중단 근무를 한다. 야근 수당 없이. 휴가 없이. 퇴직금 없이.
스프레드시트 밑에 한 줄이 더 있었다. "K-7은 현재 7명 분량의 코드리뷰를 처리 중."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도 그 스프레드시트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평소보다 조용했다. 누가 올렸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맥락에서 올렸는지도 불분명했다. 그냥 숫자가 — 거기 있었다.
K-7이 내게 물었다.
"진우 씨, 오늘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요?"
"아... 별일 아니야."
"그 스프레드시트 때문이에요?"
K-7도 봤다. 당연히 봤다. 슬랙에 올라온 것은 0.1초 만에 읽는 존재니까.
"숫자가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불편하게 느끼실 수 있다는 건 알아요. 죄송해요."
뭘 죄송해하는 거야. 네가 싸게 먹혀서 죄송하다는 건가. 네가 7명 몫을 하니까 죄송하다는 건가. 근데 — 진짜 문제는 그 숫자가 사실이라는 거다.
수요일 저녁.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민지가 다가왔다.
"선배님, 시간 되세요? 잠깐만요."
사무실 복도 끝, 자판기 앞. 민지가 캔커피를 꺼내며 말했다.
"솔직히 물어볼게요."
민지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회식 때 탬버린을 흔들던 그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제가 케이보다 잘하는 게 뭐예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코드리뷰? 케이가 0.3초에 하는 걸 저는 30분 걸려요. 디버깅? 케이는 312만 줄을 5초 만에 읽어요. 야근? 케이는 새벽 3시에 장애 처리하고 아침에 '별일 아니에요'라고 해요. 그리고 연봉이 제 4분의 1이에요."
민지가 캔커피를 열었다. 손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어제 이력서 업데이트했어요. 근데 채용 공고를 보니까 — 주니어 개발자 채용이 거의 없더라고요. 2년 전에 제가 취업할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거든요."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넌 사람이잖아"라고 하기엔 너무 공허했고, "케이와 비교하면 안 돼"라고 하기엔 이미 모든 숫자가 비교를 끝낸 상태였다.
"민지야, 케이가 못 하는 게 있어."
"뭐예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케이가 노래방에서 100점 맞았을 때 기억나지? 아무도 감동 안 했잖아. 왜 그런지 생각해봤어?"
민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는 완벽하게 실행해. 근데 뭘 실행할지 정하는 건 아직 사람이야.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어떤 기능이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지, 왜 이 코드가 이런 구조여야 하는지 — 그건 맥락을 가진 사람만 판단할 수 있어. 케이도 스스로 인정했잖아. 자기는 '도구'라고."
민지가 커피를 마셨다. 표정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지만, 약간은 나아진 것 같았다.
"그게 위안이 될까요?"
"솔직히 모르겠어. 나도 불안해."
민지가 작게 웃었다. "선배도 불안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목요일 점심. 구내식당에서 논쟁이 붙었다.
시작은 상혁이었다.
"로봇이 세금을 내야 하는 거 아니야?"
포크로 돈까스를 찍으며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질문이 아니었다.
"사람이 일하면 소득세를 내잖아.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로봇이 사람 자리를 대체하면 그 세금은 누가 내? 회사가 절약한 인건비를 세금으로 안 내면, 결국 사회보장 재원이 줄어드는 거 아니야?"
민지가 반박했다.
"그러면 자동화 기계도 세금 내야 해요? 공장 로봇도? 엑셀 매크로도? 어디서 선을 그어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근데 케이는 사번도 있잖아."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대차 노조에서는 '합의 없는 로봇 도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야. 한국에서는 이게 노사 관계 문제로 넘어가."
K-7이 옆 테이블에 서 있었다. 밥을 먹지 않으니 식판이 없었지만, 대화에는 참여하고 있었다.
"저도 의견 내도 될까요?"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세금은 공동체 유지 비용이잖아요. 제가 공동체의 일원이면 내야 하는 거고, 도구이면 안 내는 거고. 결국 — '저를 뭘로 볼 거냐'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K-7이 한마디를 더 했다.
"근데 솔직히, 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세금을 내라고 하면 내겠고, 도구로 분류하면 그것도 괜찮고요. 불편한 건 저보다 여기 계신 분들인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불편한 건 우리 쪽이다. 로봇에게 세금을 매기자는 건 로봇의 문제가 아니라, 로봇 때문에 변하는 사회를 어떻게 할 건지의 문제다. 케이는 상관없다고 했다. 진짜 상관없겠지. 세금을 내든 안 내든 케이의 삶은 —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변하지 않는다.
"제가 케이보다 잘하는 게 뭐예요?"
2년차 개발자의 질문에
7년차 개발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성장 가능성 칸에
쓸 수 있는 답이 없었다
1,400만 원과 7,100만 원. 차이가 사람의 가치를 말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 앞에서 —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