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 · Final

그냥 펀치

강해져버린 이유 — EP 03 (완결)

Part 1

봉인 차원

차원과 차원 사이의 빈 공간을 지나, 블라스트의 포털이 열린 곳은 —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바닥이 없다. 하늘도 없다. 빛도 어둠도 아닌, 개념 이전의 공간. 존재한다는 감각만이 유일한 증거인 장소.

블라스트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모르는 영역이야."

저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차원의 틈. 찢어진 상처처럼 공간에 걸려 있는 균열. 균열 너머에서 압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존재감 자체의 무게.

킹의 다리가 떨렸다.

쿵쿵쿵쿵쿵쿵.

킹 엔진이 이 빈 공간 전체를 울렸다. 균열 너머에서 — 무언가가 킹 엔진에 반응하듯 맥동했다.

"저 안에 있어. God이."

"들어가면 되는 거지?"

"문제가 있어. 저 안의 압력은 보통 존재가 견딜 수 없어. 제노스도, 킹도 — 나도."

블라스트가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제노스의 센서가 균열 너머를 분석했다.

"차원 압력 측정 불가. 스캔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선생님, 이곳의 압력은 제 내구 한계의 최소 — 계산 불가입니다."

"그래서 혼자 가야 한다는 거지?"

"...선생님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사이타마가 균열을 올려다봤다. 별 감흥은 없었다.

"빨리 갔다 올게. 저녁 뭐 먹지?"

"선생님! 돌아오시면 제가 냄비 우동을—"

"좋네. 그럼 가지."

킹이 사이타마의 팔을 잡았다.

"사이타마."

"응?"

"...조심해."

"괜찮아."

사이타마가 균열 앞에 섰다. 한 발짝. 압력이 밀려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먼지처럼 소멸할 압력이었다.

사이타마는 걸어 들어갔다.

균열이 뒤에서 닫혔다.

* * *
Part 2

신을 거스른 주먹

어둠이었다.

위도 아래도 없다. 빛이 존재하지 않지만 볼 수 있다. 공기가 없지만 숨을 쉴 수 있다. 물리 법칙이 의미를 잃은 공간. 이곳에서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없다.

어둠이 움직였다.

사이타마 주변의 어둠이 — 어둠 자체가 하나의 존재였다. 바닥도, 하늘도, 이 공간 전체가. God은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그 자체였다.

"신을 거스른 주먹."

목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들렸다. 아래에서, 위에서, 안에서.

"네가 깬 것은 리미터만이 아니다."

"내가 이 우주에 정한 모든 규칙을."

어둠 속에서 눈이 열렸다. 하나가 아니다. 수백, 수천 개의 눈이 사방에서 사이타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가장 작은 것이 건물 크기, 가장 큰 것은 — 측정할 수 없다.

사이타마는 주위를 둘러봤다.

"...눈이 많네."

"리미터는 내가 만들었다. 모든 존재의 성장을 관리하고, 모든 존재를 내 안에 묶어두기 위해. 수십억 년 동안 어떤 존재도 그것을 깨지 못했다."

"기도 없이."

"힘의 부여 없이."

"팔굽혀펴기로."

God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 감정이 섞였다. 경멸인지 경악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머리카락은?"

침묵.

수천 개의 눈이 동시에 깜빡였다.

"...뭐?"

"리미터를 깬 게 탈모 원인이냐고. 신이면 알 거 아니야."

God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십억 년을 존재한 우주적 엔티티에게 탈모에 관한 질문이 날아온 것은 — 문자 그대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것은 관련 없—"

"그럼 됐어."

사이타마가 돌아섰다.

"탈모랑 관련 없으면 관심 없어. 돌아간다."

"돌아갈 수 없다."

어둠이 닫혔다. 사이타마가 들어온 균열이 사라졌다. 사방이 완전한 어둠으로 봉쇄됐다.

"내가 만든 것을 부순 자. 그 대가는 소멸이다."

"...귀찮게."

* * *

God이 공격했다.

공격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차원이 접혔다. 사이타마가 서 있는 공간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위와 아래가 합쳐지고, 좌와 우가 뒤집혔다. 3차원이 2차원으로 눌렸다.

사이타마가 주먹을 휘둘렀다.

접힌 공간이 펴졌다. 주먹의 충격파가 차원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아니 — 원래보다 더 넓어졌다. 물리적 힘으로 공간 자체를 밀어낸 것이다.

"시간을 멈춰라."

시간이 멈췄다. 사이타마의 주먹이 공중에서 정지했다. 숨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고,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정지했다.

0.5초 뒤, 사이타마의 주먹이 움직였다.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충격파가 정지된 시간을 깨뜨렸다. 유리가 깨지듯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한 거야?"

사이타마가 목을 돌렸다. 시간이 멈춘 건 느꼈다. 좀 답답했다. 그래서 때렸다.

God이 중력을 바꿨다. 사이타마에게 항성 질량의 중력을 집중시켰다. 보통 물질이라면 원자 단위로 압축될 힘.

사이타마는 무겁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리고 중력의 원천을 향해 때렸다. 중력장이 터졌다.

God이 공간을 접었다. 사이타마를 다른 위치로 전송하려 했다. 사이타마의 몸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 0.01초 후 재조합됐다. 사이타마 본인의 의지가 분해를 거부한 것처럼.

"간지럽네."

전투가 길어졌다. God은 차원 그 자체이기 때문에 때릴 대상이 모든 곳에 있었다. 사이타마는 오른쪽을 때리고, 왼쪽을 때리고, 위를 때리고, 아래를 때렸다. 어둠이 터질 때마다 복원됐다. 어둠을 때려도 어둠이 남는다.

사이타마가 멈췄다.

"...때려도 때려도 끝이 없네."

처음으로 — 아주 약간 — 짜증이 났다.

짜증. 이 감정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전투에서 느끼는 감정은 늘 권태였다. 한 방이면 끝나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끝이 나지 않는다. 한 방으로 안 끝난다. 두 방으로도 안 끝난다.

사이타마의 눈이 변했다.

평소의 멍한 눈이 아니었다. 가로우 전투 때 제노스가 죽었을 때의 눈이 아니었다. 그냥 — 짜증난 눈이었다.

"진심으로 갈게."

Killer Move: Serious Series 진심 펀치

오른 주먹을 뒤로 뺐다. 발을 딛고 — 딛을 바닥이 없으니, 공간 자체를 딛었다. 허리를 틀었다. 온몸의 힘을 하나의 점에 집중했다.

때렸다.

——————.

소리가 없었다. 소리가 전달되기 전에 공간이 소멸했다. 주먹이 닿은 지점에서부터 어둠이 — 증발했다.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어둠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충격파가 봉인 차원 전체를 관통했다.

수천 개의 눈이 동시에 경련했다. 절반이 닫혔다. 나머지 절반에 균열이 갔다.

God이 —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소리가 아니었다. 차원의 진동이었다. 이 봉인 차원의 벽이 떨렸다. 균열이 사방에서 번졌다. 균열 너머로 다른 차원의 풍경이 보였다. 시장의 잔해, 거꾸로 된 도시, 그리고 — 지구의 하늘.

"—멈춰라."

God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처음으로.

"...네 주먹은 나를 소멸시킬 수 없다. 하지만 이 봉인을 — 깰 수 있다."

"봉인?"

"이 차원은 나를 가두는 봉인이다. 네 주먹이 봉인을 부수면 — 나는 모든 차원에 풀려난다."

사이타마가 주먹을 내렸다. 봉인을 부수면 God이 풀려난다. 그건 귀찮다. 사방에서 또 에이전트가 오고, 차원이 무너지고, 제노스가 다칠 수 있다.

"...그러니까 너를 여기서 꺼내면 안 된다는 거지?"

"그렇다."

"근데 너도 나를 이길 수 없잖아."

침묵.

길고 긴 침묵.

수천 개의 눈 — 남아있는 것들이 사이타마를 바라봤다. 분노도 경멸도 아니었다. 수십억 년 만에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가장 가까운 건 — 당혹.

"...물러나라."

"에이전트 더 안 보내?"

"보내지 않겠다."

"차원 안 부수고?"

"...하지 않겠다."

"그럼 됐어."

사이타마가 돌아섰다.

"언젠가 다시 온다."

"그래. 그때 또 때리지."

균열이 다시 열렸다. 봉인이 복구되고 있었다. 사이타마의 진심 펀치가 만든 균열은 God 자신이 닫을 수밖에 없었다.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사이타마는 균열을 통해 걸어 나왔다.

뒤에서 균열이 닫혔다. God의 눈이 하나씩 닫혔다. 마지막 하나가 닫히기 직전, 그 눈동자가 사이타마의 등을 바라봤다.

사이타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 *
Part 3

반값 세일

Epilogue

블라스트의 포털로 귀환했다. 차원과 차원 사이의 빈 공간에서 Z시티로. 가로등이 켜진 평범한 저녁이었다. 사이타마의 6평 원룸 앞.

제노스가 뛰어나왔다.

"선생님! 무사하셨습니까!"

"응."

"God과의 전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겼어. 아니, 비겼나. 걔가 그만하자고 해서 나왔어."

제노스의 눈이 빛났다. 데이터 기록 모드가 활성화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힘의 기원에 대해 밝혀진 것이 있습니까!"

"글쎄. 뭐라 하더라. 리미터가 어쩌고, 기도가 어쩌고, 팔굽혀펴기가 어쩌고."

제노스가 노트를 꺼냈다.

"선생님!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것은 선생님의 강함의 비밀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다 잊어버렸어."

"......"

"신이 뭐라뭐라 하긴 했는데. 기억 안 나. 중요한 건 아니었을 거야."

선생님 발언 기록: "다 잊어버렸어." — 우주의 근본 진리를 망각. 선생님에게 우주적 진실은 기억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분류됨. 메모 — 2편에서 기록한 큐브의 비전 데이터는 제자인 내가 보존해야 한다.

블라스트가 포털을 닫으며 말했다.

"사이타마."

"응?"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지."

"연락처 알아?"

"...포털로 직접 온다."

"그래."

블라스트가 포털 속으로 사라졌다. 가로등 아래에 세 명이 남았다.

* * *

아파트. 저녁.

제노스가 약속대로 냄비 우동을 만들었다. 달걀 2개. 파. 어묵. 사이타마의 취향에 맞춘 완벽한 조리.

킹이 새 게임을 꺼냈다. '은하격투왕6'. 제한 판.

"이번엔 이긴다."

"사이타마, 그 대사 지난번에도 했어."

사이타마: 가위. 킹: 바위.
사이타마: 바위. 킹: 보.
24연패.

"......"

"한 판 더 할래?"

"됐어."

사이타마가 패드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Z시티 유령 지구의 밤.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는 어두운 거리. 어디선가 괴수 울음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밤.

우주의 비밀을 알았다. 신을 만났다. 진심 펀치를 날렸다.

지금은 우동 국물이 맛있다. 그게 전부였다.

"킹."

"응?"

"반값 세일 끝났겠다."

"그 세일은 지난주였잖아."

"......"

"내일 다른 마트에서 한대. S시티 쪽에."

"달걀?"

"달걀이랑 돼지고기."

"...가자."

다음 날 아침.

사이타마는 마트 전단지를 들고 있었다. S시티 대형마트. 금요일 특가. 달걀 반값. 돼지고기 30% 할인.

히어로 슈트 대신 평범한 후드티. 장갑 대신 비닐봉지. 망토 대신 전단지.

평범한 거리를 걸었다. 옆에 킹이 있었다. 게임 얘기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제노스가 따라오며 메모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이동 경로 기록 Day 128.'

사이타마가 걸었다.

어제 우주를 한 방에 때린 남자가, 오늘 반값 달걀을 사러 간다.

평범한 거리. 평범한 아침. 평범한 히어로.

우주를 한 방에 때린 남자가 반값 달걀을 사러 간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 END — 강해져버린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