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미터를 넘은 자
강해져버린 이유 — EP 01
반값 세일의 날
Z시티 유령 지구. 인류의 98%가 떠난 구역이다. 괴수가 수시로 출몰하고, 건물 절반이 폐허고,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도보 40분이다.
월세: 0원.
사이타마가 이곳에 사는 이유는 그게 전부다.
"선생님, 아침입니다."
제노스가 식탁에 계란말이를 올려놓았다. 완벽한 노릇노릇한 표면. 옆에 메모장이 펼쳐져 있다.
"제노스, 메모 좀 그만해."
"선생님의 일상에서 강함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잠꼬대에 비밀 같은 건 없어."
사이타마는 계란말이를 먹으며 전단지를 펼쳤다. Z시티 마트 — 금요일 특가. 달걀 반값. 돼지고기 30% 할인. 바나나 1묶음 500원.
오후 3시까지.
벌떡 일어났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정해졌다.
마트까지 가는 길. Z시티 유령 지구의 폐허 사이를 걸었다. 무너진 건물 모퉁이에서 괴수 하나가 튀어나왔다. 호랑이급. 절지동물형. 크기 약 4미터. 다리가 8개, 눈이 12개.
"인간이다! 이 구역에서 살아있는 인간은 먹어도—"
사이타마의 주먹이 지나갔다.
괴수가 사라졌다. 펑. 바람이 불었다. 사이타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장갑에 묻은 먼지를 툭 털었다.
"달걀, 돼지고기, 바나나..."
장볼 리스트를 중얼거리며 마트에 도착했다.
"오, 사이타마."
킹이 과자 코너에 서 있었다. S급 7위. '지상최강의 남자'. 실제로는 한 번도 싸운 적 없다. 사이타마만 그 사실을 안다.
"킹. 오늘 게임 할 거지?"
"아, 응... 새 게임 샀어. '우주격투왕5'."
"또 내가 지겠네."
사이타마는 달걀 팩을 집어 들었다. 반값. 좋다.
계산대를 향해 걸으며 문득 손으로 머리를 쓸었다. 매끈한 표면. 3년째 변함없는 감촉.
"있잖아 킹."
"응?"
"나, 왜 대머리가 됐을까."
킹이 멈칫했다.
"...훈련 때문 아니야? 100번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킬로 러닝. 3년. 그 때문이라며."
"그걸로 대머리가 돼? 그 정도 운동하는 사람 많잖아."
"...그건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과도한 운동으로 탈모가 오려면 최소 마라톤 수준이래. 10킬로는 조깅이야."
"......"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킹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이타마는 왜 강한가. 왜 대머리인가. 이 두 질문은 분리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상관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사이타마는 바나나를 카트에 넣었다.
"뭐, 상관없지만."
S급 1위의 방문
저녁. 사이타마의 아파트.
"가위바위보!"
사이타마: 가위. 킹: 바위.
사이타마: 바위. 킹: 보.
사이타마: 보. 킹: 가위.
게임 선택권 23연패. 이후 격투게임 본판 23연패. 합계 46연패.
"선생님, 제가 분석한 바로는 선생님의 패턴이—"
"제노스, 조용히 해."
그때.
거실 한가운데에 빛이 생겼다. 공기가 접히는 소리가 났다. 검은 구체가 나타나더니, 안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제노스가 즉시 전투 태세를 잡았다. 양팔의 소각포가 전개됐다.
킹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쿵쿵쿵.
킹 엔진. S급 영웅들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소리. 실제로는 그냥 킹의 심장이 공포로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것이다.
"긴장 풀어. 싸우러 온 게 아니야."
블라스트. S급 1위. 영웅 협회 최강.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설의 남자가 사이타마의 6평 원룸에 서 있었다.
사이타마는 패드를 내려놓았다.
"아, 1위 아저씨. 오랜만."
"...아저씨는 아닌데."
블라스트가 주변을 둘러봤다. 좁은 원룸. 빨래 건조대. 만화책 더미. 고양이 달력. 라면 박스. 이 남자가 우주 최강이라는 사실이 이 방 안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사이타마. 가로우 건 이후에 얘기하려던 게 있어."
"가로우? 아, 그 은발 꼬마."
"가로우는 꼬마가 아니— ...됐다. 본론으로 가지."
블라스트가 양손을 마주 잡았다. 무한 기호(∞). 공중에 홀로그램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검은 큐브. 어둠 속의 거대한 눈. 그리고 — 사이타마의 실루엣.
"너의 힘은 단순한 훈련의 결과가 아니야."
"?"
"'리미터'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있나?"
"없어."
블라스트가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생물에게는 성장의 상한이 있다. 그걸 '리미터'라 부른다. 넘으면 보통은 괴수화되거나 소멸한다. 신이 정한 규칙이라는 이론.
"넌 그 한계를 — 부숴버렸어. 인간인 채로. 괴수화도 안 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어."
"아, 그래서 대머리가—"
"머리카락 얘기가 아니라."
블라스트가 한숨을 쉬었다. 이 남자와 진지한 대화를 하는 건 언제나 이런 식이다.
"...요점만 말하지.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이 세계 바깥에. 차원의 저편에. 그 존재가 너를 이렇게 불렀어."
"신을 거스른 주먹."
침묵.
사이타마가 처음으로 게임 패드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내가 신을 때린 적은 없는데."
"때린 게 아니라, 넌 신이 만들어놓은 규칙을 깬 거야. 리미터. 모든 생물의 성장 상한. 그건 신이 정한 거야. 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부숴버렸어."
"100번 팔굽혀펴기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문제야."
블라스트가 주머니에서 작은 검은 큐브를 꺼냈다. 주먹 크기. 표면이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어둡다. 미스터리어스 큐브.
"이 큐브는 신과 연결된 장치야. 우리 팀이 이걸 추적하고 있어. 큐브마다 진실의 파편이 들어있어. 네 힘의 기원. 왜 네가 리미터를 깼는지. 왜 신이 널 위협으로 보는지."
"......"
"관심 있나?"
사이타마는 잠시 생각했다. 오른손으로 매끈한 머리를 쓸었다.
"그거 따라가면 왜 대머리가 됐는지도 알 수 있어?"
"...모르겠지만, 관련이 있을 수는 있어."
"가지."
제노스가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선생님의 힘의 비밀을 가장 가까이서 기록하는 것은 제자로서의 의무입니다!"
킹은 이미 현관 쪽으로 슬슬 이동하고 있었다.
"그, 그럼 나는 이만—"
블라스트가 포털을 열었다. 검은 구체가 팽창하며 바람을 끌어들였다. 킹의 몸이 끌렸다.
"잠깐잠깐잠깐잠깐—!"
네 명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차원의 첫 번째 큐브
도착한 곳은 도시였다.
하지만 보통 도시가 아니다. 건물이 거꾸로 서 있다. 하늘에 바닥이 있고, 바닥에 하늘이 있다. 중력이 3초마다 방향을 바꿨다. 위를 걷다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고, 벽에 붙었다가 천장에 선다.
블라스트는 익숙한 듯 공중에 떠 있었다. 제노스는 부스터로 자세를 잡았다. 사이타마는 그냥 서 있었다. 중력이 바뀌어도 미동 없이.
킹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집에 갈래... 집에 갈래..."
쿵쿵쿵쿵. 킹 엔진이 이 차원 전체를 울렸다. 폐허 건물의 잔해가 진동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던 기척들이 — 전부 도망쳤다.
킹은 그냥 울고 싶었다.
"이 차원에 큐브가 하나 있어. 하지만 가디언이 지키고 있을 거야."
"가디언?"
"큐브를 보호하는 차원의 괴수. S급 영웅 3명이 협공해야 하는 수준이—"
거꾸로 된 도시의 중심부. 광장처럼 열린 공간에 검은 큐브가 떠 있었다. 주먹 크기.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그 앞에 가디언이 서 있었다.
크기: 약 50미터. 갑옷을 입은 인간형이지만 팔이 6개이고 머리가 없다. 목 위에는 균열 자체가 있다 — 빛이 새어나오는 차원의 틈.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용급 이상이야. 이 차원에서는 물리 법칙이 달라서, 순수한 물리 공격만으로는 쉽게—"
사이타마가 걸어갔다.
"잠깐, 사이타마—"
오른 주먹.
보통 펀치.
가디언의 몸통에 구멍이 뚫렸다. 지름 3미터. 깨끗한 원형. 가디언이 비틀거렸다.
— 그런데 쓰러지지 않았다.
"...?"
구멍이 메워지고 있었다. 차원의 에너지가 흘러들어 몸통을 재생한다. 이 차원 자체가 가디언의 일부인 것처럼.
"그래서 말하려고 했는데, 이 차원에서는 물리 법칙이—"
사이타마가 한 번 더 때렸다.
이번엔 좀 세게.
가디언의 상반신이 사라졌다. 재생 — 하려 했지만. 사이타마의 주먹이 만든 충격파가 주변 건물을 날리고, 차원의 벽에 금을 냈다. 공간 자체에 균열이 갔다.
재생 속도보다 파괴 속도가 빨랐다.
가디언이 녹아내렸다.
"아, 됐네."
블라스트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디언을 2펀치에 소멸시킨 것도 그렇지만, 두 번째 주먹은 차원 자체에 금을 냈다. 물리적 힘으로 차원을 깨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오, 이게 큐브?"
사이타마가 검은 큐브에 손을 댔다.
큐브가 반응했다. 표면에 금이 가더니 빛이 퍼져나왔다. 홀로그램처럼 이미지가 펼쳐졌다.
3년 전의 사이타마.
밤. 혼자 달리고 있다. 이미 10킬로를 넘겼다. 다리가 풀리고, 숨이 끊어질 것 같다. 땀으로 범벅이 된 트레이닝복.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골목에서 괴수가 나타났다. 늑대급. 지금의 사이타마에게는 먼지지만, 3년 전의 그에게는 — 죽을 수 있는 상대였다.
피를 흘리면서 싸웠다. 이기지 못했다. 도망쳤다. 다음 날 또 뛰었다. 또 싸웠다. 또 피를 흘렸다. 또 일어났다.
그 장면 뒤에, 뭔가가 보였다.
훈련 중인 사이타마의 몸에서 — 아주 희미한, 금빛 실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다. 안에서 나오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안에 있던 것이 깨어나는 것처럼.
"선생님... 이 에너지는..."
"뭐야 이거. 나 빛나고 있었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내부에서 발산되는—"
홀로그램이 바뀌었다.
어둠.
어둠 속에 눈이 있었다. 거대한 눈. 사이타마를 내려다보고 있다.
큐브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죽어야 할 자가 죽지 않았다."
"부서져서는 안 될 것이 부서졌다."
"처음부터 — 지켜보고 있었다."
차원이 흔들렸다. 진동이 아니다.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감각.
거꾸로 된 도시의 하늘에 — 금이 갔다.
금 사이로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눈이 보였다.
하늘 전체를 채우는 눈.
동공이 사이타마를 향하고 있었다.
블라스트가 뒤로 물러섰다.
"...왔군."
킹 엔진이 울렸다. 쿵쿵쿵쿵쿵. 이번에는 킹 본인도 무서웠지만, 어째서인지 킹 엔진의 진동에 차원의 균열이 잠시 흔들렸다.
제노스가 전투 태세를 잡았다. 양팔의 소각포가 최대 출력으로 충전됐다.
하늘 너머의 존재가 — 팔을 뻗었다. 산 크기의 손이 차원을 가르며 내려왔다. 그 손 하나에 도시 전체가 그림자에 잠겼다.
사이타마는 고개를 들어 그것을 올려다봤다.
"큰데."
오른 주먹을 쥐었다.
"일단 때려보지."
[ END — EP 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