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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이
배신하는 순간

매일 가장 늦게 퇴근하고, 남이 안 하는 일을 도맡았다. 그런데 승진은 남이 먼저 했다. 가장 성실한 사람이 왜 가장 먼저 무너지는가.

Part I — The Trap

시스템의 착시

성실한 사람은 조직의 공백을 자기 시간으로 메운다. 빠진 동료의 업무를 떠안고, 마감 야근을 자처하고, 아무도 안 하는 잡무를 조용히 처리한다. 조직은 안정되어 보인다. 하지만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1,874h
annual hours
한국, OECD 평균 +132시간
80.6%
unused leave
연차 전부 미소진
75%
burnout
글로벌 직원 번아웃

신뢰가 역설적으로 성장을 막는다. "이 사람은 맡기면 된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조직은 그 사람을 현재 위치에 고정시킨다. 더 많은 일을 맡기되, 더 높은 자리로 보내지 않는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2019년 QJE에 실린 연구는 131개 기업의 영업사원 40,000명을 분석했다. 결과는 명쾌했다. 기업들은 최고의 영업사원을 승진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최악의 관리자가 된다.

Finding 01

최고 실적자 = 최악 관리자

승진 전 영업 실적 2배 → 관리자 가치 7.5% 하락. 실적과 관리 능력은 역상관.

Finding 02

성과 기반 승진의 비용

현재 직무의 성과로 다음 직무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다.

Finding 03

역량 함정

단기 성과가 높은 활동에 고착되면, 장기적으로 더 가치 있는 활동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조직은 성실한 사람을 신뢰하고 계속 일을 맡긴다.
그 결과, 그를 특정 위치에 고정시킨다."

Part II — The Standard

문제를 덮지 말고 드러내라

1993년 프랑크푸르트. 이건희가 임원 200명을 소집했다. 도화선은 삼성전자 세탁기 조립 라인 영상이었다. 덮개 규격이 맞지 않자 직원들이 칼로 깎아 끼워 넣고 있었다. 라인은 멈추지 않았고 생산량은 유지되었다. 이건희는 이것을 성실함의 실패로 봤다.

"양 위주에서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것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Before

문제를 덮는 성실함

불량이 나면 조용히 고친다.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묻힌다.

After

문제를 드러내는 용기

불량이 나면 라인을 멈춘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후 재가동한다.

이건희가 도입한 라인 스톱 제도는 성실함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였다. 불량을 조용히 고치는 성실함을 시스템 차원에서 거부한 것이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도전하면 실수투성이가 된다.
실수를 많이 하면 재산이 되고, 이 재산은 강한 힘이 된다."

이건희
Part III — The Shift

양에서 질로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실함이 쓰이는 위치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처리하는 자리에서 방향을 다루는 자리로의 이동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Processing Role

처리하는 자리

발생한 문제를 해결한다. 주어진 일을 빠짐없이 끝낸다. 양(量)에 성실하다. 신뢰받지만 고정된다.

Direction Role

방향을 다루는 자리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다. 구조를 바꾼다. 질(質)에 성실하다. 시스템이 개선된다.

이건희가 200명의 임원에게 요구한 것은 더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일하는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불량을 고치지 말고, 왜 생기는지 물어라. 처리하지 말고, 구조를 바꿔라.

피터의 법칙이 보여주듯, 조직은 당신을 "잘하는 자리"에 고정시키는 유인이 있다. 이 구조를 돌파하는 것은 더 많은 성실함이 아니라, 성실함이 향하는 곳을 바꾸는 결단이다.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위치가 배신한다

구조를 바꾸는 데 성실함을 쓸 때, 비로소 자신을 지키는 기준이 만들어진다.